마음을 그리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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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3. 23. 16:12
[이광희의 마주보기] 교만 / 이광희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지만 제 한 철 다 지키지 못하고 스러지는 모습들을 본다 일찍 피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늦게 피었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다 많은 재능들이 태어나지만 너무 일찍 피어나 꺾이는 것을 본다 삶이란 때로 교만하거나 슬픈 것이다 교만이 꽃처럼 피어나 먼저 타오르다가 재능이 꺾이고 시들어 덧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다 ▶ 에필로그 우리말 사전에 '교만'은 제스스로가 잘난 체하며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허영'은 자기의 능력이나 분수에 넘치게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라고 돼있다. 교만과 허영은 같은 골짜기에서 만난다. 한 때는 빛나지만 머지않아 그 대가는 혹독하다. 교만한 마음은 남에게 상처를 주며 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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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3. 8. 22:07
[이광희의 마주보기] 순간 / 이광희 지금은 순간이 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호박이 걸어 들어와 덩굴 채 축복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 마주 앉은 그대를 바라본다 모락모락 허공을 붙잡는 커피 향기 곁을 스쳐가는 바람과 구름 모든 순간과 순간은 감사와 기적이다 이제 하나의 기도로써 나를 말할 수 있다 주여, 주께서 주신 모든 순간을 감사합니다 모든 시간은 기적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안다 ▶ 에필로그 산수유 노란 꽃이 눈을 뜹니다. 하루가 다르게 물이 오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은 바람과 같습니다. 손녀와 노는 시간만큼 일이 뒤로 밀리지만 손녀의 웃음소리는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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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1. 25. 09:57
[이광희의 마주보기] 여행 / 이광희 여행을 떠났습니다 세상은 넓고 오! 거기 경이로운 풍경을 만나 자유와 기쁨을 느낍니다 안개 속의 방랑자가* 되어 세상을 굽어 봅니다 수많은 가야 할 곳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길을 걷고 새로운 삶의 모습도 바라봅니다 어디에나 욕망과 탐욕이, 선함과 거칠음이 사랑과 분노가 뒤섞이며 흘러 갑니다 비릿한 바람 속에는 꿈과 비애가 들어 있습니다 시간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갑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소파에 뒹글거리는 심심함과 평온함이 또 떠나고 싶어지는 무료함이 다시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회화 작품에서 인용 ▶에필로그 인터파크투어가 지난 1월 22일 롯데홈쇼핑 판매에서 베트남 여행 상품을 내놓자 밤 11시 30분부터 70분간의 러닝타임에서 1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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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1. 25. 09:54
[이광희의 마주보기] 어머니 / 이광희 한 평생 자식들 위해 살아온 세월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고 노랫말처럼 그 모질었던 삶이야 어이 말하랴마는 학처럼 살다 가시는 그 시절의 어머니는 이제 없다 자식들 떠나간 시골집에 혼자 남아 보고 싶은 자식들은 저마다 바쁘고 차마 남모르는 사정도 있다는 게지 눈 내리는 겨울 밤 병든 짐승처럼 웅크려 혼자서 중얼거리는 고독은 뼛속에 사무치고 차가운 바람만이 문풍지에 기웃거리다 제 길을 찾아 떠나간다 자식들이 힘 모아 보내준 공기 좋은 구비구비 산 속 요양원에도 보고 싶은 자식들은 멀리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언젠간 우리의 자식들도 힘 모아 우리를 공기 좋은 요양원에 모셔 줄 것이니 학처럼 살다 가신 그 시절의 어머니는 떠나고 외로움이 사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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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갈대꽃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1. 18. 11:03
[이광희의 마주보기] 마른 갈대꽃 / 이광희 마른 갈대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꼿꼿하던 몸통도 꺾일 날을 기다린다. 한 때의 청춘이 있었다. 거친 비바람과 짓밟힘 속에서도 푸른 꿈이 자라났다. 언제였을까? 내 청춘도 그와 같다. 한 때의 청춘은 사진 속 풍경으로 퇴색하고 푸른 꿈은 이미 아득하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마른 갈대꽃으로 흔들린다. ▶에필로그 영하 20도가 넘는 매서운 한파가 한 차례 지나갔습니다. 주말엔 또 강추위가 온다고 하네요. 탄천변에 마른 갈대꽃들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목이 꺾인 갈대꽃도 있습니다. 예사로 보이지 않네요. 푸르게 푸르게 저마다 키가 크겠다고 키높이를 겨루던 날을 기억합니다. 지나고 나면 무상할 뿐입니다. 내 꿈도 이제 키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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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기도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1. 13. 00:14
[이광희의 마주보기] 밤의 기도 / 이광희 달빛이었을까 가로등일까 암막커튼의 열린 틈으로 누군가 방안을 들여다 본다 곁에 잠이 든 손녀의 얼굴에 서늘한 빛이 머물고 반듯한 콧등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 곁에 할머니의 숨결이 평온한 꿈을 꾼다 어둠에 익은 눈이 손녀의 환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불을 덮어준다 하나의 기도가 고요 속에서 일어선다 주여,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소서 ▶에필로그 요즘은 부모가 아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집이 참 많습니다. 일하는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부르다가 잠이 든 손녀는 안쓰럽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서 다행입니다. 춥고 긴 겨울밤입니다. 암막 커튼의 희미한 불빛으로 잠든 손녀를 바라보다가 이불을 덮어 줍니다. 아이들은 왜 이불을 자꾸 걷어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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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1. 1. 20:19
[이광희의 마주보기] 새해 첫날 / 이광희 새해 첫날 아침 서늘한 새벽 공기와 장엄한 일출을 함께 하지 않았다 한 해의 꿈을 이루어줄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부시시 깨어난 손자와 손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손자를 가슴에 앉고 축복을 한다 차례로 손녀들도 가슴에 앉고 축복을 한다 내 한 해가 그렇게 시작했다 지리산에 올라 천왕봉의 일출에 기도하지 않고 정동진에 자리하여 동해의 일출을 기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새 해를 맞으며 어제와 같이 오늘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손자 손녀의 행복이 새해 아침의 꿈이다 ▶에필로그 물리적인 시간은 구별이 어려울지라도 우리 마음은 새벽과 아침을 구별하고자 합니다. 새해 아침은 언제나 축복의 시간이고 희망과 함께 합니다. 그 어려웠던 코로나의 한해가 가고 2021년 새해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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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언덕에서마음을 그리는 시인 2021. 1. 1. 11:46
[이광희의 마주보기] 시간의 언덕에서 / 이광희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순수한 사람, 열정이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배려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들이 시간과 함께 내 삶에 도움을 주었다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만났다 거짓말하는 사람, 사기치는 사람, 무례한 사람 그들이 내게 상처를 주고 고통의 시간도 주었다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세상이 말한다 그럼에도 상처와 고통에 위안과 치유를 덮어준 것은 결국 시간과 사람들이다 돌아보면 그 모두를 더하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위안과 치유의 중심이었다 손자와 손녀의 웃음소리는 내 행복의 정점이다 좋은 사람들이 내 삶을 이끌어 주었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그들도 내게 단단함을 더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한 해가..